이번 기사에서는 저번 글에 이어서 전반전인 기획의 진행과 출제 의도, 후기 등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프 더 레코드 느낌으로 가볍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귀찮으시다면 마지막에 zH 씨와 안자토 씨의 후기가 간략히 정리되어 있으니 그 부분이라도 읽어 주세요.
이전 기사와 마찬가지로 이하 내용은 읽는 것만으로도 기획에 관한 큰 스포일러가 됩니다. 이 점 유의하면서 읽어 주세요.
기획 진행
우선 이 기획은 원래 이렇게 규모가 커질 예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실 이 기획의 모든 시작은 제 컴퓨터가 3월 1일 갑자기 고장나 버렸기 때문에 당시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PC가 고장나서 할 일이 없어진 저는 그냥 주변 지인들(zH 등)한테 낼만한 퀴즈나 조금 만들어볼까 해서 간만에 노트를 펼치고 문제를 조금 끄적이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컴퓨터가 많이 고장나서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노트에 생기는 수수께끼의 양도 점점 늘어나고 이 시점에서 이미 8개의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다만 이 8개가 본편에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추후 '미수록된 수수께끼'를 이야기할 때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문항이 제법 만들어지자 '이걸로 작은 퀴즈같은건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PPT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사이트를 만들어서 공개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냥 지인들이 있는 개인 서버 등지에서 공개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즈음해서 zH 씨에게 이 문항들의 검토를 부탁했습니다.
또한 餡砂糖 씨에게 수수께끼의 검토를 부탁하는 DM을 보낸 것이 3월 7일이었습니다. 일본의 음MAD 작자분께 DM을 먼저 보낼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에 간만에 하는 경험에 조금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흔쾌히 요청을 받아 주셨기 때문에 매우 안심했습니다.
zH 씨와 안자토 씨 모두에게는 수수께끼를 풀고, 각 수수께끼의 감상과 함께 개선해야 할 점 (단서를 추가해야 할 부분 등)을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두 분 모두 제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디테일하게 풀이 과정 소개와 피드백을 해 주셔서 상당히 감동받았습니다. 확실히 교차 검증을 하니 제가 혼자서 만들고 풀어 볼 때는 몰랐던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와서 역시 하길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두분 다 수수께끼 풀이 쪽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소위 말하는 짬바가 있다는 것이 티가 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때쯤 기획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따로 사이트를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참고로 사이트를 제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공개 이틀 전인 3월 15일이었습니다.
3월 12일, 피드백 반영 사항과 함께 새로운 문제 몇 개의 검토를 다시 부탁드렸습니다. 이때 안자토 씨에게 한글을 사용해 푸는 문제를 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같이 보내드렸는데, 어느정도 푸신 흔적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3월 14일, 마지막 문제 초안의 검토를 부탁드렸습니다. 다 만들어 놓고 보낼때는 이걸 보내도 되나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므로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두 분 모두 훌륭하게 정답을 맞춰 주셨기 때문에, 다행히 문제 자체에는 일단 결함이 없구나 하고 안심할 수 있었네요.
그리고 같은 날에 안자토 씨가 한국인 전용 문제는 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일본인용 수수께끼를 만들어 대체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셨습니다. 말만 들어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것 같았지만, 본인이 직접 수수께끼를 만들어 오시는 걸 보고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러저러하다가 마침내 3월 17일이 되어 기획을 공개했습니다. 날짜별 기획 진행은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고, 이제부터는 각 문항을 출제할 때 의도했던 바와 피드백을 통한 변화 과정 등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사정으로 본편에 수록되지 못한 수수께끼들도 여기서 함께 소개합니다.
출제 의도
예상 외로 막히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던 1번 문항입니다. 수수께끼 풀이의 시작 느낌으로 간단히 만들어 넣은 문항인데, 너무 직관적이라서 오히려 불친절하게 다가왔던 것인지 의외로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제 보니 좀 불친절한 것 같기도 하네요. 때문에 난이도를 조절하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번 너프를 했습니다만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번 문항은 텍스트 없이 특수문자로만 구성된 수수께끼를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흔히 오토신스라고 부르는 otoMad-synthesis.mid에서 특수문자인 - 와 . 만 있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된 것으로, 화면 구성 기호와 곡 번호 등 이런저런 요소들을 추가하다가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기호가 들어간 모든 곡을 단서로 집어 넣었습니다만 단서를 줄여도 될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고 4개만 있는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덕분에 ! 가 들어간 두 개의 곡 중 하나를 찾아내는 데에 기호가 사용되어서 이 점은 굉장히 마음에 드는군요.
이 문항은 가장 먼저 구상이 끝난 수수께끼입니다. 한자를 이용한 수수께끼는 언제나 이런 분야에서 단골로 출제되기 때문에 하나 정도는 낮은 난이도로 출제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구상할 때는 배우 김영철을 넣어서 왼쪽 그림과 같은 구성으로, 정답이 折이 될 예정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4x4 구조를 만들기로 해서 김영철의 자리를 진나이 토모노리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초안에는 없다가 문제를 더 만들기로 하면서 출제된 문제입니다. 색상을 사용한 수수께끼를 낼 수는 없을까? > BLACK에서 L만 어떻게 가리면 DO BACK BURN과 엮어서 낼 수 있지 않을까? > D는 RED에서 따고 UR은 PURPLE에서 따면 되겠다! 와 같은 순서로 문제가 만들어 졌습니다.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한 형태였는데,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이것저것 종이가 겹쳐있다는 단서를 추가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서도 잠깐 막히시는 분들이 꽤나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원래 라이어 댄서라는 점을 캐치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각 MAD의 썸네일을 그대로 박자니 난이도가 너무 낮아지고, 그렇다고 라이어 댄서라는 정보를 아예 안 주려니 진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텍스트의 색상을 라이어 댄서에서 따온 특징적인 컬러로 채워서 출제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래도 라이어 댄서라는 정보가 부족하고 차라리 라이어 댄서라는 키워드는 던져 주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라이어 댄서임은 공개해 버리기로 했습니다. 또한 보시다시피 원래는 기호가 아니라 A B C로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6번 악보 문항. 이 문항에서 고전하시는 분들이 한일 국적 불문 상당히 많았습니다. 1차 과속 방지턱이라고 할까요. 아마도 글자 수도 알 수 없는 채로 답을 알아내야 한다는 점과, 쓸데없이 1991이라는 숫자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1991이라는 숫자는 METAL BEAT가 수록된 게임 METAL MASTERS의 발매 연도입니다만 푸는 데에는 혼란만 일으킬 것 같아 추후 삭제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제 난이도 조절 실패로, 6번에 배치한 것도 지금 보니 큰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이 수수께끼도 위 4번 문항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늦게 출제된 것으로, 전반적으로 암호 해독 게임 'Cypher'를 참고한 문항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표를 사용하는 문제를 내 보고 싶다 > 악보를 쓰려면 사실 영어 계이름 말고는 단서로 쓸만한 게 없네 > 예전에 했던 게임 중에 이런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 Cypher에 비슷한 암호가 있었던 것 같다. 라는 의식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참고로 Cypher는 수수께끼보다는 정말로 암호 해독 그 자체에 집중한 퍼즐 게임으로, 시저 암호를 비롯한 다양한 암호 해독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검색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난이도는 상당합니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문항입니다. 급하게 내려고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퀄리티 있는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7번은 직전 문항에 비하면 무난하게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문제는 난이도보다는 한 칸씩 채워 나가는 성취감을 목표로 구성된 수수께끼입니다. 수정된 부분은 빨간색 칸이 하나 이동했다는 점과, EVANS와 TRASH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는 점(뭔가 EVANS가 먼저 나오는 게 한번 꼬아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칸의 색이 검정에서 흰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안자토 씨가 문제를 검토할 당시 인쇄해서 풀이하셨는데 인쇄해서 푸는 사람 입장에서는 칸이 흰색이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항 중 하나입니다. 겹치는 부분이 있는 곡들을 찾을 때도 컴퓨터 폴더를 뒤지다 보니 은근히 수월하게 해결됐고, 자주색 수평선이라는 기믹도 역으로 추리하는 데에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되어 마음에 듭니다. 다만 역시 곡명을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국 검색 싸움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은 조금 아쉽군요.
그리고 기획을 공개하고 나서야 알아챈 거지만 온리원더를 제외하면 모두 리듬 게임 수록곡이라서 4번째 줄도 리듬 게임 수록곡 중에서 검색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이 부분도 매끄럽지 못한 것 같아서 약간 아쉽네요.
이 문제는 원래 단서와 정답이 원래 완전히 정반대였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본래 논논비요리를 던져주고 로키를 찾는 문제였지만, 단서가 엄청 긴데 정답이 '초콜릿' 안에서만 해결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역으로 로키를 던져주고 대신 '코'를 통해 디스코라는 키워드를 알아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논논비요리'의 '논논'은 겹선으로 표기하고 나서도 이게 잘 이해가 될까 걱정했는데 다들 잘 풀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안도했습니다.
이 문제도 꽤나 마음에 듭니다. '디스코'로 끝나는 곡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이용해 수수께끼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꾸준히 해 왔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시각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뒤의 3글자가 '디스코'라는 것을 유추하는 단서도 적당히 스무스하게 유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9번 문항은 거의 초안 그대로입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4를 잉크로 가렸다는 점이겠네요. 5 - T도 충분히 큰 단서지만 4 - ル가 보이면 누구나 四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난이도 조절을 위해 잉크로 가려 버렸습니다.
이 문제는 아이디어가 번개같이 떠올라서 바로 시도해본 결과 상상 이상으로 깔끔하게 맞아 떨어져서 기분 좋게 작업한 기억이 있습니다. 5 - T는 처음부터 상정하고 만든 것이었지만 七이나 二一은 이 문제를 위한 건가 싶을 정도로 운좋게 들어가서 만들면서도 싱글벙글했네요. 마찬가지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문제입니다.
10번 문제이자, 2차 과속 방지턱의 역할을 했던 문제입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제가 기획을 공개하고 나서 꾸준히 여기저기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마지막 문항을 제외하면 04 06 10 12 14의 다섯 문항에서 시간을 소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문제는 FavOtoMædIV라는 키워드를 얼마나 빠르게 떠올릴 수 있는가에 따라 풀이 시간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물론 12.5나 45 같은 숫자만으로는 이를 떠올리기 어렵고 가장 큰 단서는 역시 포켓몬스터와 DELTARUNE이 되겠죠. 수직선의 정체만 알아냈다면 가나다는 무엇인지, 12.5와 45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a와 t에 숨겨진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전부 알아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a와 t의 값을 직접 알아내는 과정도 남아 있긴 합니다.
이것도 뭔가 수학문제st로 나왔다는 점과 탄생석≒생일로 자연스럽게 엮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문항 중 하나입니다만 그와 별개로 기획 공개 후 a와 t를 반대로 적었다는 것을 새벽 4시에 알아챘기 때문에 급하게 수정했습니다. 몇 번이고 검토를 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겨버려서 조금 쪽팔렸네요. 그리고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 ■■■라는 글자 수를 통해 정답을 찍어서 맞춘 분들도 몇 분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찍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15번에서 잠깐 고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습니다.
이 문제는 zH 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담당한 문제라서 제가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대신 수수께끼로써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는 점은 명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별다른 지시도 없이 음MAD에 자주 쓰이는 곡만 나열해 놓았는데 하나의 온전한 수수께끼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이건 제가 낸 문제가 아닌 만큼 역으로 제가 검토 겸 풀이를 해 보았는데 답을 알아챘을 때 상당히 감탄한 기억이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여담이지만 이 문항도 10선 뒷풀이 당시 역퀴즈쇼로 공개될 예정이었던 문항이었으나 검색을 해야만 한다는 이유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정말 좋은 문제라서 묻히면 아쉬울 뻔했는데 이렇게 다시 살아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11번과 비슷하게 외부 단서를 필요로 하는 문항이었죠. 주기율표라는 단서만 깨달으면 그 이후로는 시간문제입니다만 주기율표라는 단서를 찾아 내는 것이 꽤나 시간을 소요합니다. 예상하기로는 8자리 숫자 앞에 있는 62 = sm이라고 상정하고 검색하면 사마륨이라는 원소가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주기율표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왼쪽의 초안대로 냈으면 그건 어땠을런지 잘 모르겠네요.
위 두 이미지의 중간 시점에서는 이런 방식도 고려했습니다. 지금 62(Sm)으로 제시된 단서를 28 27 28 27(NiCoNiCo)로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안자토 씨가 62 = Sm이라는 깔끔한 정보를 던져 주셨기 때문에 바로 채택했습니다. 이걸 왜 못 찾았을까요?
이 문제에 관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원래는 양쪽의 40과 09를 공개하고 가운데 네자리를 알아내는 문제였는데, 여기서 zH 씨가 완전히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정답을 알아내는 데에 성공하고 맙니다.
덕분에 8 두개만 공개하고 8자리 모두 맞추는 문제로 선회했습니다.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군요.
한글 키보드의 특징인 자음 + 한자키 = 특수기호 입력을 활용하는 문제입니다. 이미지를 보시면 원래 초안보다 상당히 복잡해진 형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원래 정답은 에고록이 될 예정이었지만, '발상을 떠올리는 과정에 비해 정답으로 가는 길이 너무 단순하다'는 의견을 십분 반영하여 나온 결과물이 오른쪽입니다. 하지만 문제 기믹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UI가 좀 지저분해져서 개인적으론 그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문항은 아닙니다.
여기부터는 여담이지만, 이 문제는 과거에 다른 형태로 구상했던 수수께끼에서 영감을 받은 문항입니다. 당시 생각했던 문제는 대충 아래와 같은 형태였습니다.
(ㅈ, 5) (ㄷ, 7) (ㅊ, 5) = 3
(ㅈ, 6) (ㄱ, 2) (ㄷ, 8) (ㅊ, 1) = ???
기믹은 그대로입니다. 심심하신 분들은 한번씩 시도해 보세요.
14번 문제입니다. 초안에서 수정된 사항은 거의 없으며 25가 XX로 가려져 있다는 점만 바뀌었습니다. 난이도가 높아졌죠. 시저 암호를 활용한 정석적인 문항이 내보고 싶었던 참에 이것저것 검색해 보던 중 S2에 제목이 12글자인 곡이 4개나 있다는 점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바로 출제했습니다. 실제로 구현한 것 자체는 모든 수수께끼들 중에서도 거의 마지막이지만요. 출제할 때부터 상당히 높은 난이도일 거라고 생각해서 14번이라는 최후반부에 배치했고 실제로도 여기서 많은 시간을 쏟으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의외로 6번이나 12번보다 수월하게 해결하시는 분들도 꽤나 계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저 암호라는 점만 찾으면 나머지는 조금 쉽게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이 문제는 Web 수수께끼 풀이 게임 Quick+Lazy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수수께끼입니다. 처음 보고 정말 듣도보도 못한 풀이 방법을 가지고 있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고 음MAD와 연관지어서 내 보려고 시도하다가 나온 결과가 이 문제입니다. 어찌보면 레퍼런스 원본 문제가 이 14번보다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후반부 문제 치고는 그렇게 마음에 드는 문항은 아닙니다. 우선 S2가 공식 시트가 없어서 앞선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Cynical Joker의 순서가 애매해지기도 했고, 암호 해독 문제 특성상 어느정도의 노가다가 결국 들어가야 해서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문제입니다. 만들면서도 알파벳 밀고 작업하느라 귀찮았는데, 푸는 입장에서는 오죽할까요. 그래도 난이도 하나는 적당하게 책정된 것 같습니다.
대망의 마지막 문항입니다. 일본 쪽에서는 이런 류의 수수께끼를 이른바 모노리스 수수께끼라고 부르는 듯 합니다. 저 역시도 그쪽에서 모티브를 따 오기도 했고요. 이 문항은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밑도 끝도 없어지기 때문에 가볍게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보통 이런 총집편 같은 수수께끼를 마지막에 넣는다고 하면 마지막 수수께끼를 먼저 구상하고 그에 맞춰서 이전 수수께끼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마지막 문제가 이런 포맷이 될 거라고는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앞의 14개 문항 기믹을 아득바득 모으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딱 봐도 아시겠지만 모든 문항 중 만드는 데에 가장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에 비해서는 완성도가 엄청 높지는 않고 오히려 허술한 곳들도 몇몇 있었지만, 나름대로 마음에 들게 맞아 떨어진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Anzato와 Oz Han을 문제에 은근히 포함할 수 있었다는 점과, 위도 경도를 문제의 작은 단서들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 정도일까요.
가장 아쉬운 점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이 부분일 것 같습니다. 언뜻 보기엔 19를 △화살표를 거쳐 S로 변환하는 과정은 무난해 보이나, 문제는 이것을 19△S 로 해석하는 사람과 1+9△J 로 해석하는 사람이 나뉜다는 것입니다. 19에 더 굵은 사각형이라도 쳤어야 했는데 이건 조금 아쉽습니다. 사실 이게 걱정되어서 △화살표의 성질을 설명하는 우상단 칸에서, 알파벳 2개 >> 숫자 는 표현했으나 숫자 2개 >> 알파벳 은 설명하지 않긴 했습니다. 다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다음에 또 할 일이 있다면 이런 부분은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당장은 들지 않지만요.
여담으로 이번 기획의 모든 수수께끼는 파워포인트로 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참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수록되지 않은 수수께끼
이 문제는 가장 처음에 구상했던 8개의 초안 중 하나였습니다. ㄷㅍ문과 ㅏㅑ차ㅠㅁ○를 한영키를 눌러 변환하면 EVANS와 KICKBAC○이 되는데, 이 대문자 알파벳들의 대칭성을 기반으로 푸는 문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EVANS는 E가 상하 대칭, VA가 좌우 대칭, 그리고 NS가 점대칭이므로 위 이미지와 같이 표현됩니다. 아이디어 자체는 예전부터 있었으나 대칭성의 표현 방식도 그저 그랬고 무엇보다 한영키 기믹은 13번이 가져갔기 때문에 그대로 폐기되었습니다.
이것은 zH 씨가 이 문제를 보고 제시한 단서 아이디어입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방식으로 에반스와 킥백을 제시하기에는 살짝 어려움이 있기도 했고요.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폐기된 문항입니다. 어떻게 다른거랑 잘 엮어서 내 보려고 열심히 시도해 보았는데,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서 수록되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정답은 시바마타입니다. 결국 시바마타는 15번 문제에서 얼굴이라도 비추게 되었죠.
본편에 수록된 버전과는 좀 다른 음표 수수께끼입니다. 원래 상정했던 정답은 Disco Necropolis였으며, D의 가사에 is를, C의 가사에 on을 적어서 D is C on ... 와 같은 방식으로 곡 제목을 완성하려고 했으나 ropolis 부분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이 문제는 아이디어 하나는 떠올리고 기분이 꽤 좋았습니다. 하지만 구현하다가 삼진 에바로 기각되었습니다. 원래 아이디어는 QR코드를 만들고 > 그 점들 중 일부를 활용해 점자로 변환한다는 QR코드+점자 기믹이었는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업하다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이 영상을 못 쓴건 좀 아쉽네요. QR코드를 한번씩 찍어 보세요.
설문조사 결과
아시다시피 15문항 전문을 돌파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번 단락에서는 해당 설문 조사의 결과를 간략하게 이미지로 나타내서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모든 답변은 설문지 작성 여부 및 시각을 기준으로 합니다. 즉 아무리 빨리 돌파했어도 설문지를 늦게 적었다면 어쩔 수 없이 늦게 푼 것으로 간주합니다. 제가 따로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선 3/17 ~ 3/23 일주일 간 모든 문항을 돌파하는 데에 성공하신 분들은 총 16명이었습니다. 한국인 2분, 일본인 14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 중 3/17 공개 당일에 돌파하신 분이 7명 계셨습니다. 대표 URL을 답하지 않으셨거나 프로필 사진이 기본 이미지이신 분들은 일괄적으로 같은 디폴트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참고로 따로 이미지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설문조사 항목중에는 풀이 방식(혼자 풀었는지, 여럿이 풀었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처음부터 여럿이서'를 답하신 분들이 8명(50%), '일부 문제는 다같이'를 답하신 분들이 7명(43.7%), 그리고 '전부 혼자서'를 답하신 분이 1명(6.3%) 계셨습니다.
위 16분들 중 가장 빠르게 돌파하신 분은 양정훈 씨였으며, 공개 당일인 3/17일 오후 5시 17분 38초에 도전을 완료하셨습니다. 그 뒤를 ruiji 씨와 나포리 씨가 무섭게 따라잡고 있군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3월 17일 17시~18시 즈음해서 6분이 연속으로 돌파에 성공하셨다고 알림이 오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간대일까요?
다음으로 인당 최대 2개씩 답할 수 있었던, '가장 재미있던 수수께끼'를 고르는 항목입니다. 여기서는 압도적인 격차로 zH 씨가 출제한 11번 문항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발상의 승리라고 해야 할지, 음MAD에 자주 쓰이는 곡들로 절묘하게 모스부호를 만들어 내서 최종적인 정답도 결국 음MAD 소재로 이어지도록 했다는 일련의 과정이 말도 안되게 매끄러운 문제였습니다. 완전히 납득이 가는 우승입니다.
그 뒤로 10번과 15번 문항이 공동 2위를 차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문제는 바로 다음 항목에서도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웠던 수수께끼'를 고르는 질문이며 마찬가지로 인당 2개까지 선택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는 마지막 문제인 15번이 62.5%로 1위를 차지합니다. 2위는 비교적 초반 문제였음에도 (특히 너프 전에) 상당히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던 6번 문항이, 3위는 수직선의 의미를 알아내는 데에 시간을 소모하는 10번 문항이 각각 차지하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는 6번 제외하면 나름대로 난이도를 높게 책정한 문제들이 이름을 올린 것 같아서 만족스러운 결과입니다.
후기
우선, 일개 기획에 상상 이상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전에 별로 없었던 기획이기도 하고 그만큼 해본 적 없는 시도(사이트를 만든다던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에 준비하면서도 걱정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찌저찌 무사히 마무리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랐던 부분은 일본 분들의 참여도가 생각보다 매우 높았다는 점일까요. 일본판 사이트를 따로 만들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안자토 씨의 노력 덕에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해외 음MAD 작자의 기획에 참여해 주신 분들, 그리고 한일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 주신 안자토 씨 모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사실 음MAD 작자로써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MAD 외적으로 봐도 그럴 지도 모르죠. 제가 언제 다른 분들이 제가 만든 수수께끼를 생방송으로 풀고 있는 화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요. 가끔씩 생방송으로 푸시는 것을 보면 인디게임 개발자가 된 것 마냥 새로운 기분이 들어서 즐겁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오류가 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시청했습니다. 참고로 앞서 말했다시피 나포리 씨의 방송에서 10번 문항의 오류를 알아채기도 했습니다.
제 시점에서 보아도 꽤나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2년 10선 기획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네요. 늘 상상만 하던 기획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타니 쇼헤이, Anything Goes!, 라이어 연합 등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잔뜩 담아낼 수 있었기에 더 즐거웠던 것 같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비슷한 기획을 다시 한번 준비해 보고 싶습니다.
막간을 이용해 zH 씨와 안자토 씨의 간단한 기획 참여 후기를 보내 드립니다.
예전부터 수수께끼와 Web미궁을 자주 즐겨 왔기에 이렇게 출제자의 입장에서 맞이한 이번 기획은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한일 양국의 수많은 도전자분들이 제각기 방법으로 힘을 합쳐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합작을 공개하는 것과는 또 다른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몇 주 전 처음으로 수수께끼를 서로 주고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판이 글로벌하게 커질 줄은 몰랐기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합니다만,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출제한 11번 문항은 이런 수수께끼에서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단골 소재인 모스 부호를 활용한 문제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저번 기사에서도 언급한 10선 퀴즈쇼 <우리매드 겨루기>의 뒤풀이 기획을 준비하면서 만들었던 문제 중 하나인데요. 특성상 오프라인에서 풀기엔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있어 자체적으로 묻어두었던 걸 이렇게 적절한 곳에서 선보일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폐기 문제들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공개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제 의도】
· 8번 (일본판) 문항
일본인 전용의 수수께끼이므로 일본어의 지식을 묻도록 의식.
최종 문제에 저 (Anzato)와 ozHan 씨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사계 씨의 이름도 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 「나츠미(夏海)」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눈치채고 채용. 세로 일자로 글자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깔끔해서 이 중에서는 ④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 13번 (일본판) 문항
'75114'라는 대답이 될 만한 수수께끼를 만들었을 때 ABCCD라는 구성의 영어 단어를 리스트업.
거기서 'GREEN'이 붙는 곡을 찾아 봤더니 딱 좋은 곡이 3개 발견되었기 때문에 채용.
숫자와 알파벳의 대응표도 제각각인 문자열이 아니고, 음MAD 요소를 엮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코멘트】
음MAD × 수수께끼 풀이 기획이 나와서 기쁘고, 거기에 참여한 것도 기쁩니다! 해외 작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걸어주신 사계 씨, 또, 훌륭한 수수께끼를 제공해 준 zH 씨,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본 팀도 질 수 없으므로 저도 수수께끼 풀이 기획을 시작해 보고 싶네요. 부디 기대해 주시길.
글을 마치기 전에, 21일에 안자토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서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안자토 씨는 2년 전인 2022년 7월 9일 음MAD작자 시크워즈 Ⅱ (단어찾기 퍼즐) 라는 작은 기획을 공개하신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무작위로 나열된 듯한 문자들 사이에서 주어진 음MAD 작자 약 70명을 찾아내야 하는 수수께끼인데요, 놀랍게도 여기에 제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저는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마지막 업로드가 2019년 8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제 이름이 들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2년만에 같은 기획에서 만나게 되어서 서로 놀랐습니다.
혹시나 SORI: NAZO를 재미있게 즐기셨던 분이라면 위 기획도 가볍게 한번 즐겨보세요. 어느 정도의 일본어나 음MAD 제작에 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 보다는 볼륨이 상당히 크리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우리 존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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